BUILDER NOTES
AI가 0에서 80을 만든다면, 사람은 80에서 98을 만든다
AI는 초기 제품을 만드는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였다. 하지만 그 속도 때문에 더 분명해진 것도 있다. 마지막 결과물의 밀도는 여전히 사람에게서 나온다.
최근 AI 창업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직접 여러 제품을 만들면서 반복해서 느낀 점.
빠른 초기 버전
AI가 가장 강한 구간. 아이디어가 화면에 올라온다.
구조 이해
결과물을 이해하고 고치기 시작해야 하는 구간.
제품 판단
충돌하는 요구와 디테일을 정리해야 한다.
빌더의 차이
도구보다 사고 구조, 설계 능력, 인내력이 드러난다.
최근 AI 창업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직접 여러 제품을 만들면서 반복해서 느끼는 점이 있다.
AI는 사람들에게 빠르고 효율적으로 그럴듯한 초기 버전을 만들어주는 데 매우 유용하다. 0에서 80까지 가는 속도는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아이디어를 화면에 올리고, 랜딩페이지를 만들고, 프로토타입을 붙이고, 사용자가 눌러볼 수 있는 형태까지 가져가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효율성에 고무되어 A, B, C, D 여러 아이템을 동시에 빠르게 만들어낸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부분은 80에서 멈춘다.
80 이후부터는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해하는 일이 된다
80에서 90을 만드는 일은 0에서 80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 구간에서는 단순히 AI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구조를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틀린 것을 수정해야 한다. 그제야 제품은 그럴듯한 화면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물건에 가까워진다.
더 어려운 단계는 90에서 95다. 이 구간은 체감상 0에서 80보다 훨씬 더 무겁다. 겉보기에는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품의 논리, 흐름, 성능, 데이터, 사용자 경험, 운영 가능성을 모두 다시 봐야 한다.
대부분의 결과물은 0에서 80, 많아야 90 근처에 밀집한다. 그 안에서는 제품들이 서로 비슷해지고, 서로 충돌하고, 결국 시장의 소음 속에 묻힌다.
일부만이 95 수준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로소 상대적인 경쟁 우위가 생긴다. 누가 더 빨리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깊이 이해하고 끝까지 정리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95 이후에는 도구보다 사람이 더 선명해진다
95에서 96, 96에서 97로 가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단계에서는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AI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역량, 진짜 아이디어, 사고 구조, 설계 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최종 결과물은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할 때 단순히 손을 움직이다 보니 그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머릿속에 완성된 형태가 있었던 것과 같다.
AI는 손의 속도를 높여준다. 하지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어떤 구조로 정리할지, 어디까지 책임질지는 여전히 사람이 결정한다.
Working note
양산의 속도와 제품의 밀도는 다르다.
AI로 결과물이 쉽게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는 즐겁다. 하지만 냉정하게 복기하면, 그중 상당수는 시장에 남는 제품이라기보다 제작 과정의 부산물에 가깝다. 빠르게 만든 흔적은 많지만, 끝까지 이해한 결과물은 적다.
반대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과정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이해력과 인내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1-2%의 미세한 차이를 계속 쌓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97의 제품에서는 AI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제품이 95 이상의 완성도에 도달하면 더 이상 AI로 만들었는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80 수준의 결과물에서는 이 질문이 유효하다. AI가 없었다면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97, 98 수준의 결과물에서는 이 질문 자체가 점점 의미를 잃는다. AI를 사용했더라도 누구나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AI로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직접 책임질 수 있는가. 그리고 80에서 멈추지 않고 95 이후의 작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AI는 시작선을 바꿨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의 밀도는 여전히 사람에게서 나온다.